이른바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심판들의 역할과 권한도 점차 축소되고 있다. 국내 4대 프로스포츠(야구·축구·농구·배구)만 봐도 모두 비디오판독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다. 2014시즌 중반 도입된 프로야구의 비디오판독은 아웃·세이프를 시작으로 페어·파울, 야수의 포구 여부 등 대부분의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올 시즌부터는 자동투구판정 시스템(ABS)까지 도입됐다. 심판의 고유권한으로 여겼던 스트라이크·볼 판정까지 전자기기를 활용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말 그대로 ‘뉴프런티어’ 시대다. 잘못된 판정을 바로잡을 수 있게 되면서 심판들과 선수단이 불필요한 감정 소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순기능이다. 그동안 권위의식으로 비난을 받았던 심판들이 권한 축소에 따른 위기의식을 느끼게 하는 효과도 있다. 체크스윙 여부 등도 중계화면을 통한 판독이 가능하기에 심판들의 역할이 더욱 축소되리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스스로 신뢰를 깨트린 심판들의 행동은 결코 가볍게 받아들일 수 없다. 14일 대구 NC 다이노스-삼성 라이온즈전 도중 심판진이 판정을 논의하는 과정이 그대로 방송에 노출되면서 큰 파장이 일고 있다. 주심이 ABS의 ‘스트라이크’ 콜을 듣지 못하고 ‘볼’을 선언한 뒤 모인 심판진의 대화 과정에서 “음성은 분명히 볼로 인식했다고 하세요. 우리가 빠져나갈 건 그것밖에 없는 거예요”라는 발언이 튀어나왔다. 잘못을 덮기 위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한 구단 핵심 관계자는 “어처구니가 없고 참담한 일”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KBO는 해당 심판들을 곧장 직무에서 배제하고 인사위원회에 회부했다.
이미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향후 ‘심판 재량’의 영역이 경기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경우 더 큰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그렇다 보니 일부 팬들은 ‘심판 무용론’까지 주장한다. 보크 판정 등도 중계 화면을 통해 확인이 가능하고, 아웃·세이프와 페어·파울 등도 전자장치를 통한 판독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테니스와 축구의 경우 인·아웃(테니스)과 골라인 판독(축구)을 위해 ‘호크아이’를 활용하고 있다.
기술의 발전은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이런 상황에서 심판들 스스로 신뢰를 저버리면 중계화면과 전자기기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라운드에 서는 심판을 최소화하고, 비디오판독을 전담하는 이들을 늘려 경기를 진행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구성원 모두가 위기의식을 느끼고 ‘제로베이스’에서 출발해야 하는 이유다. 영원한 것은 결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