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선수들의 각양각색 퍼포먼스로 꾸며진 KBO 올스타전, 롯데 자이언츠 선수들도 준비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느라 여념이 없었다. 윤동희는 자신과 닮은꼴로 알려진 배구선수 김희진(IBK기업은행)을 흉내냈고, 정보근은 자신의 이름과 발음이 비슷한 게임 ‘버블 보블’의 캐릭터로 분장한 채 나타났다. 그런데 주제를 직관적으로 정할 수 있던 이들의 퍼포먼스와 달리 선수 본인의 큰 결심이 필요했던 퍼포먼스가 있었다. 배달원 분장을 하고 나타난 황성빈(27)의 ‘배달의 마황(마성의 황성빈)’ 퍼포먼스다.
●“웃음으로 승화해 극복할 수 있다면…”
황성빈이 배달원과 연관 지어진 배경에는 자신을 향한 일부 팬들의 조롱과 비하가 있었다. 배달의 상징인 오토바이처럼 발이 빨라 생긴 이미지도 있을 테지만, 실제론 일부 팬들이 지난해 머리를 탈색한 황성빈에게 배달원을 비하하는 표현을 쓰며 조롱한 게 발단이었다. 이에 황성빈과 기획을 함께한 구단 관계자와 구단 유튜브 채널 ‘Giants TV’의 담당 PD도 이 퍼포먼스에 대해선 선뜻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웠다고 한다. 구단 관계자는 “선수의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퍼포먼스”라며 “주위 동료들의 반응까지 살핀 뒤 고심 끝에 선보이기로 결심한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기예르모 에레디아(SSG 랜더스)의 대체선수로 올스타전에 나선 황성빈은 당초 다친 선수 대신 발탁된 만큼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데 조심스러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과 팬을 위해 기꺼이 이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로 결심했다. 그는 스포츠동아와 인터뷰에서 “(일부 팬들이) 배달원 분들을 낮잡아 부르는 말로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며 사실 참 힘든 시간을 보냈다”며 “처음 이 퍼포먼스를 기획하며 ‘시간이 지나 후회하진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밝혔다. 이어 “하지만 ‘웃음으로 승화해 극복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 않을까’라고 마음먹고 퍼포먼스를 준비했다”고 덧붙였다.
●“형, 할 거면 제대로 하자”
가족이 큰 힘이 됐다. 황성빈은 남동생의 “형, (퍼포먼스를) 할 거면 어설프게 하지 말고 제대로 하자”는 말을 듣고 더 큰 용기를 냈다. 이에 민트색 오토바이를 탄 배달 대행 플랫폼 ‘배달의 민족’의 마스코트를 패러디하기 위한 여러 물품과 초인종 소리가 담긴 음향 파일까지도 철저하게 준비했다. 마운드의 박세웅에게 줄 로진을 철가방에서 꺼내 전달한 아이디어 역시 황성빈의 의지에서 비롯됐다. 이에 구단 관계자도 황성빈의 극복 의지를 헤아려 인천SSG랜더스필드에서 최대한 가까운 전동 바이크 대여점을 찾아 민트색 기종을 주문하기도 했다.
이에 보상이 따른 듯, 팬들에게 큰 재미를 선사한 황성빈은 베스트 퍼포먼스상도 수상했다. 비단 ‘배달의 마황’ 퍼포먼스에만 그치지 않은 영향도 컸다. 황성빈은 절실했던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다른 팀 선배 선수들의 흉내로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됐던 스킵(skip) 동작도 오히려 더욱 과장되게 해보이며 또 한번 아픈 상처를 씻어내기도 했다. 팬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한 것은 물론, 자신을 향한 비난마저도 호감으로 바꾼 의지의 결과였다.